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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0일 토요일

한낮인데 어둠  침침하고 비가 올듯 말듯한 전형적인 벤쿠버 겨울 날씨다.

한낮 최고 기온도 10 도씨를 전후한 춥지 않은 겨울이다.

우리가 이민 온 이십 년 전에 그랬다.

겨울에는 비만 왔지 눈을 보기 어려웠다.

한 해 한 해 날씨가 변하더니 이 삼년에 한번 폭설이 쏟아지고

연례행사가 되었다.

그런데 금년에 오랫만에 옛날 날씨를 되찾은 것같다.

4월부터 거의 빠짐없이 하루에 한 시간씩 카메론 팍을 걸었다.

날씨탓인지 12월에 들어서면서 걷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번 걷게 된다.

집근처인 키스윅 팍 주위는 교통량이 많아 매연에 시끄러워 걷기 싫은 곳이었는데

겨울이고 연말이라 한낮에는 교통량이 적어 걸을만하다

그래서 요즘은 카메론 팍 대신 집 주위를 걷고 있다

일기예보로는 오늘 비가 온다 했는데 하루 중 비가 그칠 때가 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걸으면 되지만 우산없이 걷는 것이 편하다.

어릴때는 책읽는 것을 좋아했다.

오빠가 읽던 동화전집을 물려 읽었는데

어린이 합창단에 다니면서 친했던 옥희가 합창단 연습 시간에 가져온 북유럽 동화책은 신선하게 느껴졌다

오빠없는 맏딸에 뛰어난 머리로 공부도 잘했던 옥희는 집안의 기대주로 부모의 관심과 지원을 받았다.

합창단에서 지방 공연을 가면 옥희는 간식으로 과자를 가져왔는데

나에게 관심이 없는 엄마는 아무것도 챙겨주지 않았다.

마음이 고팠던 나는 옥희의 과자를 다 먹어 치워 옥희를 화나게 했었다.

국민학교 4학년때 미술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엄마는 누워서 자기 신세 한탄만 하고 

간식은 커녕 나의 도시락도 싸주지 않았다

점심 시간에 굶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한 선생님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주셨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도 않았는데 입상을 하게 되어

갑자기 나는 그림 잘 그리는, 그림에 소질있는 아이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의 일을 기억도 못하신다

오빠가 부모의 기대 속에 무너지는 것을 본 이후 나도 그렇게 될까봐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딸인데다 별볼일 없어 보였는지 나에 대한 기대를 접으셨다

부모의 무관심 속에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같다

집에는 객식구들이 많았는데

유일하게 하숙비를 내고 머무는 문중의 먼 친척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에게 책을 읽고 싶다고 책을 사달라고 했더니

세 권의 책을 사주셨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또 하나는 괴테의 책이었는데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추첨으로 ㅍ여중에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읽어서 좋은 책 목록을 나누어 주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용돈이 생기면 책을 사서 읽었다

책장에 책이 한권씩 늘어나는 재미도 있었다

특별한 용돈이 없던 나는 그 영모 아저씨의 신세를 많이졌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프랑코 코렐리의 내한 공연이 있었을때도

아저씨게 돈을 받아 그 공연에 갈 수가 있었다 

입석이었는지 자리가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가까이 보고 싶어 같이간 친구들과 맨 앞좌석 앞 무대 바로 밑 맨 땅에 앉아 봤었다

프랑코 코렐리의 공연을 보러간 것은 어린이 합창단에서의 영향때문이었던 것같다

합창단에서 총무 비슷한 일을 하시던 분이 명동에서 찻집을 겸한 음악 감상실을 하셨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그곳에 가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바빠서 한가하게 음악을 들을 수 없었지만

집에 턴테이블과 클래식 음악 소품 레코드 전집이 있어서 혼자 즐겨 듣곤했다

책장사로부터 사 놓은신 브리테니카 백과사전과 김찬삼의 세계여행전집도 있어서

혼자 갖은 상상과 공상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같다

공부를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과목이 너무 많다보니 한 가지 공부를 깊이있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하는 것이 없게 된 것같다

대신 상식은 많아지는 것같다

이곳에서 우리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보면 과목이 적어 폭넓은 상식이 부족하다

학과목이 적은 대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파고들 시간을 많이 주는 것같다

일류대를 나오긴 했는데 한국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기본적인 것을 모를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이곳에서는 너무나 가르치지 않는 것같다

같은 집에서 자라도 형제 자매들간의 취향이 다른 것같다

나와 오빠도 다르고 나와 여동생도 다르다

아이들 역시

의정부에 살면서 강남에 있는 예술의 전당까지 데려가 호두까기 인형 발레 공연도 보여주고

미술 전시회도 데리고 다녔는데 집에 클래식 음악 소품집이 있어도 클래식 음악에는 관심이 없다.

아들은 독서를 좋아하는데 딸은 독서에 취미가 없다

의정부에 살면서 아이들은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유치원에 다녔는데

일 주일에 한번은 야외활동을 나갔다

스키장이 가까워 겨울에는 스케이트와 스키 강습을 많이 다녀

아직도 겨울 스포츠를 좋아한다

얌전하고 소극적 면이 있음에도 활기찬 유치원 생활로 내적 힘을 키웠는지 

이민와서 씩씩하게 적응을 잘한다

돈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일을 찾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업을 마치고 취업을 하고

짝을 찾아 결혼을 하고 독립을 했다.

이민자로서 외노자로서의 어려움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잘 살고 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지만 나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