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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2일 금요일

북극권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와 최강 한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루 최저 기온이 영하 12도씨, 13도씨, 17도씨,

체감 온도는 영하 20도씨, 30도씨란다.

눈도 살짝 내려 장소에 따라 교통 지옥을 만들고 있다.

가끔 이런 해가 있다.

지금 일을 하고 있다면 근면 성실한 나는

이런 날씨에도 불구하고 억척스럽게 출퇴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도 그랬었으니까

내가 태어난 날도 그렇게 추웠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정릉 국민주택 100번지

다른 집은 대지가 50평이었는데 그 집만 백평이었다고 한다

엄마는 불평과 불만이 많은 분이었다

사백년 적장자로 내려온 집안에 귀한 첫 아들인 오빠를 낳았을 때도

기쁨보다 태어난 오빠가 털복숭이로 원숭이 처럼 생겨 징그러웠다고 불평을 하셨다

내가 태어날 때는 너무나 추웠다며 몸서리를 치셨다.

여동생이 태어났을때는 먹을 것이 없어 국수만 먹었다고 불평을 하셨다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는 40이라는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느라 관절이 나빠졌다고 불평을 하셨다

엄마는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없으셨고 아이 보는 것을 싫어하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도 강릉에서 열살된 분남이 언니가 올라와 나를 돌보았다

그 언니가 포대기에 나를 업고 다닌 기억이 난다

엄마의 불평은 90이 넘은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있다

요즘은 출산을 하면 산후 조리원을 거치는데

나 때는 친정 어머니의 손을 거쳤었다

첫아이 때는 아버지의 배려로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주셔서 친정에 한달 머물수 있었다

둘째 때는 아버지가 힘드시다고 해서 친정에 일주일 머물다 집으로 왔다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는 것이 싫었던 나는 복대를 하고

집안일을 하고 내가 먹을 미역국을 끓이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혼자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남에게 맡기기가 싫었다.

연년생이었는데 연년생은 쌍둥이보다 키우기 어렵다고 했다

아이들은 순한 편이었고

아이들이 예뻐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었던 것같다

일년 이년이 흐르면서

아이들과 집안일에 매어있던 나는 차츰 지치기 시작했고 힘듦이 느끼지기 시작했던 것같다

그러다 아파트 상가안에 있는 놀이방을 발견했고 놀이방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놀이방을 거쳐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의 시간이 더 많아졌다

생활력 강한 시댁 친척들은 바깥일을 하지 않는다고 궁시렁댔다

큰애가 작게 태어난데다 잘 먹지 않고 잘 자지 않고 잘 자라지 않아

남에게 맡기고 일하러 가려니 안심이 되지 않았다

남편 혼자 버는 돈으로 생활이 되는데다

내가 밖에서 일해 번 돈을 아이 돌보는 사람한테 주느니 내가 직접 키우는 것이 나을 것같아

전업 주부로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4,5학년에 캐나다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남편이 옷가게를 열어 일을 하게 되었지만

사스때문인지 관광객도 끊기고 경기가 좋지 않아 가게문을 닫게 되었다

일을 해야 했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 특히 아들에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방황을 해서

아이들을 집에 두고 일을 하러 나가기가 불안했다

남편은 이민을 오면서 나에게 주는 생활비를 끊었지만

저축한 돈을 아껴서 생활비로 쓰며 버텼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때부터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경제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살아갈 정도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취업준비를 해서 미술관 발런티어를 시작으로 구직활동을 했다

이민자 봉사기관을 통해 위너스에 취업을 할 수 있었고

최저 임금에 파트 타임 잡이었지만 그로서리비를 할만한 돈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취미삼아 일을 하기에 괜찮은 잡이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내가 아이들 결혼을 시키려면 돈이 필요할 것같아

페이가 높은 풀타임 잡을 찾아 이직을 했다

지역신문을 통해 집에서 가까운 새로 생긴 실버타운에서 사람을 구해 이력서를 넣었고

운좋게 취업이 되었다

밤에 혼자 일하는 콘시어즈 잡이었는데

캐나다에서 중요한 연줄도 인맥도 없다보니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까지 하게 되는 불공평함도 있었다

그럼에도 5년 반이라는 시간이 지나 은퇴할 때까지 일을 했다

사실 70까지 일 할 수도 있었지만

나와 같이 은퇴를 하기 위해 73세까지 일한 남편때문에 더 일을 할 수가 없었고

나의 건강도 나빠져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작년 은퇴를 하고 일년 동안은 건강에만 신경을 썼다

채식 중심의 음식을 먹고 매일 산책을 하다 보니 많이 건강해졌다

그동안 아들 딸들도 결혼을 하고 아들은 손녀까지 만들어 주었다

딸과 사위도 물론이지만 아들과 며느리도 맞벌이를 하고 있다

며느리는 코비드때 실직을 하면서 아이가 생겨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3년간 일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게 되면서

맞벌이를 해야 어린이집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받을 수 있게 되어 

자의반 타의반 일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옆에서 보면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참 힘들어 보인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의 보살핌을 덜 받게 되는 것같고

부모는 밖에서 일하랴 집에와서 아이돌보랴 이중으로 일하게 되어 힘들어 보인다

옆에서 되는대로 육아를 돕고 있지만

아이가 어릴땐 엄마가 전업주부로 옆에 있어주는 것이 정서적 안정에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엄마보다 아이보는 능력이 뛰어난 아빠가 있다면 아빠가 돌보는 것도 좋겠지만

아들네 같은 경우는 엄마가 나은 것같다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6년정도 아이를 돌볼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좋을 것같다

그때까지 어린이집 비용이나 유치원비를 저렴하게 해서.

아이를 편하게 키울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들네는 계획하지 않고 아이가 생겨 낳았지만

딸은 아이 낳는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요즘같은 장수 시대엔 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취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가 생기면쉬면서 아이를 어느정도 키우고 늦게 취업이나 재취업을 해도 괜찮은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