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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6일 토요일

오늘 밴쿠버 역대 3월 16일의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날이라고 한다.

낮 최고 기온이 20도씨가 될 것이라고 한다.

금년 3월 날씨가 작년 3월 날씨보다 따뜻하다고 느꼈는데

화창하고 맑은 20도씨의 기온은 보너스같다.

다음주 화요일까지 좋은 날씨를 보이다

수요일부터는 낮최고 기온이 10도씨로 떨어지고 비오는 날씨가 된다고 한다

작년 4월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작년 4월은 비오고 춥고 바람불고 하는 궂은 날씨였다

그에 비하면 금년 3월은 작년 4월보다 날씨가 좋은 편이다.

남편은 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이나 그로서리 쇼핑을 하는 일이왼

집에서 꼼짝을 하지 않는다

무슨말도 잔소리로 들리는지 집에서 헤드폰을 끼고 산다

날씨 좋은날 산책하라는 말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시간도 식사 시간도 달라 한 집에 살지만 따로 또 같이의 삶이다

각방 생활은 큰아이가 태어나면서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콩깍지가 씌워져 몰랐던 남편의 입냄새 발비듬은 지금은 참을 수가 없다 

이제는 노인냄새가 더해졌다

남편에게도 나의 참을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각방생활이 서로에게 편하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날에도 남편은 두꺼운 거실 블라인드를 꼼꼼히 쳐 놓는다

마치 어두운 동굴은 만들어 놓고 사는 것같다

누가 본다고 그렇게 가리고 사는지 모르겠다 

남편과 같이 있으면 어쩔수 없이 거실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데

남편이 부엌옆 거실 식탁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는 나의 주변을 돌며

뭘하는지 뭘보는지 살펴보는 일은 부담스럽다

내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면 좋은데 내 방에 가면 와이파이가 잘 되지를 않는다

시간이 많아 노트북을 펴고 나를 성찰하며 글을 쓰고 싶은데

거실에서는 남편이 의식이 되니 편하게 글을 쓸 수가 없다

남편이 방으로 낮잠을 자러 갔다

남편은 하루에 한번쯤 이 시간 낮잠을 자는데

나는 겨울이라 가장 따뜻한 이 시간 산책을 나간다

오늘은 글을 쓰기 위해 산책을 미루었다

은퇴를 하고나면 쉬고 싶어진다

한 일년 쉬면 회복되겠지 했는데

일년으로 부족한 것같다

딸도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며 아르바이트까지 투 잡을 몇년 한 적이 있는데

그러고나니 몸이 상해서 일년쯤 쉬었는데 일년 쉬어도 몸이 회복되지 않는다고 했었다

은퇴를 해보니 그 말이 무슨뜻인지 알 것같다

남편은 산책할 정도의 체력이 회복이 되지 않은 것같다

나는 걷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무조건 나가서 걸었다

그랬더니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많이 개선이 되었다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이 정상이 된다

하지만 약에 의존하면 약의 복욕량이 늘어난다

최소한의 약으로 버티며 궁극적으로는 약을 끊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아들네는 3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가까이 살며 손녀를 돌본다는 핑게로 일 주일에 며칠 서로의 집을 오가며 분주히 살다 떠나니

허전했는데 스트레스가 없다보니 혈압이 내려간다

나는 아이들의 사주를 인터넷으로 보기는 했는데 봐도 뭐가 뭔지를 모른다

점집에 찾아가 아이들의 사주를 본 적이 없다

어둡게 자란 아빠와 아이들의 사이가 좋지는 않아도 

탈없이 잘자라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독립해 나가 잘 살고 있다

아직까지 아이들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

아이들의 사주를 알아 아이들때문에 이렇고 저렇고를 알면 뭐가 달라질까?

아이들에 대한 편견만 남을 것같고 그 사주에 맞추어 그 사주에 맞게 자식들을 기르게 되는 것같다 

자식복 없다는 말을 듣고 그 자식들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나중에 덕도 보지 못할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싶어질까?

그래서 자식들에게 인색하게 굴다 자식덕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내가 결혼하면 친정 재산의 반이 없어진다고 했단다

하지만 나에게 돈복이 있는지 내가 태어난 이후 친정은 내가 결혼할 때까지 재산이 불어났었다

내가 결혼할 때 친정 재산이 가장 많을 때였다

내가 결혼후 아버지가 고종 사촌 형부의 꼬드김으로 사업을 해 재산의 손해를 봤지만  

반이 남았다

강릉집과 선산은 지켜졌고

서울집과 엄마가 차지한 아버지 돈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0년이 넘도록 버는 사람없이도

남동생과 엄마가 돈걱정없이 살고도 충분한 돈이었다

그런데도 친정이 잘못된 것이 나의 사주 팔자 때문이라며 나를 원망한다

엄마는 항상 내가 친정 재산을 탐낸다고 하는데

나는 친정에 뭐가 있다 뭐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부자집의 가난한 딸이라 돈에 관심이 없었다

결혼할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불평도 하지 않았고 뭐를 달하거나 해달라는 말도 해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친정에 유산 포함 돈얘기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다

돈을 꾸어달라는 말도 해본 적이 없다

친정 도움없이 내 힘으로 살고 싶었다

아버지는 마음이 여린 분이셨는데 밖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에 와서 푸셨다

집에와서 밖에서의 화를 푸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신다고 하면 부딪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자는척을 하고는 했었다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셨다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부부싸움도 많이 하셨는데

엄마는 순종적인듯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함부로 내뱉는 면이 있었다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생각없이 함부로 내뱉는 면이 있었는데 아버지에게도 그러셨던 것같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가나 엄마에게 손지검을 하셨다

아무것도 몰랐을때는 엄마가 약자같아서 항상 엄마편을 들었었다

아버지가 나쁘다고

하지만 커서보니 엄마의 성격과 말이 문제였던 것같다 

엄마는 할머니와 고모와도 사이가 좋지 않으셨다

어릴때는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와 고모를 미워했는데

지금보면 엄마의 덕이 부족해서 였던 것같다

아버지는 집안에서 무서운 존재셨다

어려운 존재셨다

그럼에도 나는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바른말을 하곤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나를 기특하게 생각하셨다

집안에서 딸인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차이도 하늘과 땅같은데 딸은 존재가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예뻐하시니까 집안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셨다

아버지도 집안 사람들이 나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셨다

오빠도 항상 너는 아버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세째 작은댁 아저씨가 나에게 친정일에 상관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친정일에 상관하지 않았는데

그럼 그들이 친정을 챙겨야 하는 것아닌가

그런데 그들도 다 떠나고 상관하는 사람들이 없다 

찾아오지도 않는다

열살 위인 누이 한분이 계시지만 아버지는 외아들 독자셨다

그럼에도 아버지를 일찍 잃은 사촌 동생들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물심양면 최선을 다해 돌보셨다

어릴때는우리에게 최선을 하지 않으시고 친척들을 위해 애쓰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 엄마와 올케와 조카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조부모님과 아버지가 뿌린 선과 덕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적장자로 대가 끊어지지 않고 사백년 내려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닌 것같다 

작은 아들들과 딸들의 희생도 있다

또한 그만큼 많이 베풀고 살아야 받게 되는 복이자 덕인 것 같다

그런면에서 친정이 자랑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