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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9일

친정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어두워진다.

4살 위인 오빠가 고등학교때 발병을 한 이후

내 삶은 어두워졌다.

아마 엄마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친가와 외가의 유전적 요인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인정을 하려하지 않았다.

점쟁이를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사는 엄마는

점쟁이가 내가 맏이 노릇을 해야 할 팔자라 오빠가 아픈 것이라고 

오빠의 병 탓을 나에게 돌렸다.

또 내가 엄마가 둘인 팔자라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고

엄마가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탓을 나에게 돌렸다.

집안의 모든 나쁜 탓을 나에게 돌리고 

내가 집안의 모든 액을 받아야 하는 액막이라도 되는듯

나를 미워하고 잔인하게 짓밟았다.

엄마의 악의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주시는 분은 아버지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 왕국이 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엄마의 홀대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결혼을 했고

아들 딸 아이들이 있었고 집도 있고 직장있는 남편이 있어

엄마없이 사는 것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히려 외로운 것은 엄마가 아니었을까

한국에 있을 때는 명절, 엄마 생일을 꼭 챙겨드렸다.

하지만 이민을 오면서 우리 경제 사정이 나빠져 더 이상 엄마를 챙겨드리지 못했다.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되었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30년이 넘도록

밖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경제적 걱정없이 잘 살고 계시다.

챙겨 놓은 돈이 있었던 것같다.

올케가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고 해서 엄마에게 무슨 돈이 있어 달라고 하나 했는데

엄마가 숨겨놓은 돈을 올케는 알고 있었던 것같다.

여동생도 그 돈을 달라고 했다가 엄마와 의절을 하게 된 것같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강릉 관동대학교 뒷문 근처에 원룸으로 꾸민 집을 마련해서

오빠네가 걱정없이 살 수 있게 해주셨다.

그곳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올케는 걱정없이 살 수 있다

올케는 오빠가 돌아가신 후 오빠 이름으로 된 집과 선산을 자기 이름으로 돌린 후 

자기 마음대로 팔아 써 그 담대함에 친척들뿐 아니라 문중 사람들까지 놀래켰다

대대로 집안에 그런 발칙한 며느리는 없었다.

친척들이나 문중 사람들에게 말을 듣게 되니까 올케는 친정 친척들을 불러들여

자기 친정 식구들하고만 어울려 살고있다

아버지 산소에는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만 계셨는데

작년에 가보니 오빠뿐 아니라 증조부 고조부까지 모셔져 있다.

그분들 계시던 선산을 다 팔아 치운 것같다

정말 뻔뻔하기 짝이 없다.

그런 여자와는 말로 상대를 할 수가 없다.

싸울 수도 없고 

남동생과 엄마가 올케로부터 서울집과 돈을 지키고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도와줄 형편이 못되는데 그 돈으로 걱정없이 살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스페어라는 해리 왕자의 자서전이 있는데

남동생도 우리 집안의 스페어이다.

400년 장손의 장손으로 대가 끊어지지 않고 내려 온 집안에

장손인 오빠에게 병이 나니 온 집안의 근심이 되었다

엄마 아버지가 결혼 후 낳은 첫째가 아들이라 걱정이 없었는데

4년 후 딸인 내가 태어났고 안전을 위해 다시 낳은 아이가 6살 아래인 여동생이다 

나나 여동생이 아들이었으면 걱정이 없었을텐데

유일한 아들이 병이 나니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해 아들이 필요했었던 것같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 엄마 나이 40에 남동생이 태어나게 되었다

여동생과는 10살 차이, 나와는 16살 차이, 오빠와는 20살 차이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가 3년에 한번씩 이사를 하시면서 집을 불려

막내는 우리집이 가장 여유 있을 때 태어나

가장 여유있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막내가 7살에

내가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 후 1년만에 아버지가 사업으로 부도가 난 이후

막내는 소란스럽고 시끄러운 안정되지 못한 집안 환경에 놓이게 되었던 것같다

아버지는 스트레스 술 담배로 건강이 나빠지셨고

우리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아들 딸을 낳고

아버지는 딸의 돌까지 보신 후 돌아가셨다

남동생이 어릴때 학원에 가면 내가 종종 데려다 주었는데

늙은 엄마가 데려다 주는 것보다 누나가 데려다 주는 것을 좋아했고

나를 좋아하고 잘 따랐었다

한국에 살았다면 같이 지낼 시간이 많았을텐데

미국에 갔다 상계동 의정부에 살면서 늘 멀리 떨어져 살게 되었다

막내와 같이 산 시간이 7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막내를 나에게 부탁하셨지만

엄마가 끼고 살며 나를 배척하니 가까이 할 수도 없다

살고 있는 집이라도 자기 이름으로 갖고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년인가 살고 있는 집 명의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느냐고 물으니

남동생이 자기 이름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집값이 오르기 전 명의를 바꾸고 상속세 양도세를 다 냈다고 한다 

그래서 잘했다고 해주었다

집값이 오르기 전에 물려받아 그만큼 세금을 덜 내게 되었고

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잘 해드리니 복을 많이 받아 집값이 올랐나 보다고 말 해주었다

내가 동생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고 빌어주는 것뿐이다

엄마가 남동생과 살면서 처음엔 엄마가 동생을 돌보았지만

지금은 동생이 엄마를 돌보고 있다

스페어지만 동생이 없었다면 엄마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동생도 때에 맞게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좋으련만

이기적인 엄마가 자기를 위해 아들을 희생시키며 사는 것같다

오빠도 나도 남동생도 집안을 위한 희생자가 된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