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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0일

한달에 한번 머리 염색을 하는데

염색할 때가 되면 하기 싫고 귀찮아진다.

그럼에도 어느날 염색할 마음이 생겨 염색을 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다행인데 언제쯤 검은 머리를 포기하고 흰머리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는 나를 쫒아다니는 어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고 싶다

친정 부모님은 불행하게도 엄마 아버지 모두 나르시시스트였던 것같다.

아버지는 독재적이고 독선적이셨지만 마음이 여리고 사랑이 많은 분이셨다

엄마는 뛰어난 미인이셨지만 열등감이 많고 시기 질시가 많은 덕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이시다

사랑을 줄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분이시다

부인과 엄마의 사랑이 고픈 아버지와 우리 형제 자매들은 애정 결핍에 시달렸던 것같다

엄마 자체도 사랑이 고픈 애정 결핍자이시다

하지만 사랑을 할 줄을 몰라 사랑을 받을 줄도 줄줄도 모르신다

엄마는 나르시시스트라기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것같다.

가정에서 아내와 엄마의 존재는 참 중요한것같다

엄마로인해 우리 가정은 모두가 불행했던 것같다

그리고 가족 관계를 산산히 부숴뜨리고 무너뜨린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중심이라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엄마와 올케때문에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모님은 모두 자기애가 강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분들이라

누구보다 자신들이 먼저인 분들이었다.

자식들이 잘 되되 자신들을 넘어서면 안된다.

언제까지나 그분들이 자식들을 지배하고 주무르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앞으로 뻗어나가 잘 될 수가 없다.

그분들이 자식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나이가 들면 부모가 자식들에게 져주어야 하는데

90 넘은 노모는 아직도 권력을 쥐고 계시고 정신이 짱짱하시다

오빠가 국민학교때 엄마의 치마바람으로 특수 과외까지 해가며

전교 일등을 하고 학생 회장을 할만큼 총명했지만

일류인 ㄱ중학교 시험에 긴장으로 답안지 작성을 잘못해 떨어져 이차인 ㅈ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ㅈ중학교 3학년때 ㄱ고 입시를 위한 반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반 학생들 모두가 ㄱ고에 진학을 했다

오빠는 그 반에 들어가지 않고 ㄱ고 진학을 포기했다

그리고  ㅈ고등학교 2학년때 발병을 했다

병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오빠는 ㅇ대 천문기상학과에 가고 싶어했는데

아버지의 강요로 ㅈ대 농경영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 생각엔 오빠가 강릉 집과 선산을 지켜야 하니

강릉에 가서 농사 짓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같다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일방적이 생각이셨고

오빠는 아버지가 나온 그 학교를 너무나 싫어했다

하지만 반항을 할줄 몰랐던 오빠는 안으로 서서히 깊이 병들어갈 뿐이었다

엄마는 같은 환경의 내가 병에 걸리지 않은 것을 신기해 하신다

오빠는 장손이라 병원 치료라도 해주지만

딸인 내가 병에 걸렸다면 이름모를 산골 요양원에 버려 버려졌을 것이다

그곳에 갇혀 나는 오래 살지도 못하고 지금 이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 내가 이렇게 결혼도 하고 아들 딸 낳고 아들 딸 결혼시키고 손녀도 생기고

집 걱정없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캐나다에서 살고 있는 것이 기적같다고.

나도 대학에 들어가기가 힘들었는데

엄마가 고등학교만 나와 엄마를 넘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힘들었다

서양화, 회화과를 택하지 않았다면 선택의 폭이 많았을텐데

교수레슨도 받지 못한 처지에 유명 사립대학 서양화과, 회화과을 가려하니

선택의 폭이 좁고 경쟁이 치열했다

선생님들은 서울대를 가라고 했었는데

서울대보다 가고 싶었던 ㅇㅎ여대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재수를 했는데

아버지가 ㅈ대를 권유하셨다

아버지가 나온 ㅈ대에는 아버지 친구분들이 많이 계셔 도움을 받을 줄 알았는데

입학은 지원하지도 시험을 보지도 않은 ㅅ초급 대학에 입학이 되어 있었다.

ㅈ예대 전신인 ㅅ초대는 ㅈ대와 같이 존재하면서 강의실과 교수님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너는 이년제 대학을 나와 시집이나 잘가면 된다고 하시더니

아버지 마음대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다

고역인 것은 ㅈ대 4년제 학부생들과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그들로부터 갖은 무시를 당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우리의 존재를 부끄러워했고 싫어했다

동네에서 친구들과 그들 형제 자매들이 일류 고등학교 일류 대학 다니는 것만 보다가

이류인 그들의 우월감이 갓잖게 느껴졌지만 어쩔수 없었다

미팅을 할때도 대학 연합써클에 들어갔을때도 처음 사귄 남자친구마저 

얼마나 공부를 못했으면 그 학교에 갔냐고 비웃고 무시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들먹이며 진짜 그 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을 정도다

북촌에 살아 친구들과 그들의 형제 자매들은 일류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데

3류도 못되는 학교를 다니게 되어 좋은 친구들을 모두 잃어 버렸다.

나의 대학생활은 비참했다

부모님은 나의 비참함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지 못한 엄마는 대학에 다니는 나를 그저 부러워했다

그런 엄마의 시기 질시 때문에 초대에 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화를 고집하지 않았다면 유명 사립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다면

무난한 대학에 무난히 입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선생님들이 권유한 ㅅ대학에 갔었으면 ㅈ도 남편도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입학을 위해선 교수 레슨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에게 투자할 부모님들이 아니어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초대 1학년 2학기에 부산에서 학생들이 떼로 편입을 해오더니

2학년에 학부로 모두 편입을 해갔다

그 중엔 대통령 조카라는 여자 아이도 있었다

초대를 졸업할 때 초대가 없어진다며 마지막으로 초대생들을 위한 편입 시험이 있었다

초대를 졸업하고 나 자신을 포기할 수 없어 ㅈ대 3학년 편입 시험을 보았고

나는 이등과 점수 차이가 많이 나는 예대 전체 일등으로 편입을 할 수 있었다

학부생들과 같은 교수님들 밑에서 공부를 하면서

나를 좋게 봐주시고 알게 모르게 나를 도와 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었던 것같다 

이것은 나중에 깨달은 것이고 그 당시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미술계의 부패에 실망해 그림을 떠나고 싶었다

편입후 사귄 학부 친구는 한 명인데

그 친구는 나와 사귀어 주는 것을 자기의 바다같이 넓은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발전한 곳이 되었지만

그 당시는 부산 근처 시골의 촌이었던 곳에서 어떻게 그 학교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기가 고아라고 밝혔다

일본에서 딴 살림을 하고 사는 양아버지와 별거를 하고 사시는 그녀의 양어머니는

그녀를 금지옥엽으로 키우셨다.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고아라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혼자 독차지하고 사는 그녀가 부러웠다

그녀는 한남동 신흥 주택가의 그럴듯한 집에서 사는 나를 부잣집 딸고 알고

나의 부유함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같은 과의 부잣집딸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나역시 부잣집의 가난한 딸이라 돈이 없어 그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소외된 그녀와 나는 친해지게 된 것같다

그녀외에 대학 동창이라고 말할 사람이 없다

가회동에서 한남동으로 이사를 하고 내가 결혼을 한 뒤

엄마는 여동생에게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여동생의 학교가 집에서 멀다며 여동생을 다니는 학교 근처에 하숙을 시키고 

치마바람을 일으켜 여동생을 반장을 만들고 재수끝에 ㄱ대 영문과에 입학을 시켰다

나로인해 딸에게 학벌로 졌으니 자기대신 대항마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동생이 좋은 대학에 입학해 자랑스러웠을 뿐이다.

여동생은 엄마의 중매로 결혼을 했고 엄마의 신세를 많이 진 여동생은

엄마의 가스라이팅에 놀아나는 존재가 되었다

엄마는 편애와 차별로 나와 형제 자매들 사이를 이간하고 멀리하게 만들었다

나는 형제자매들과 싸우지도 않았고 미워하고 싫어하지도 않았는데

엄마의 가스라이팅으로 그들이 나를 피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런 여동생이 작년 추석에 엄마와 싸우고 의절을 했다.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을 보면 부모 형제 자매들이 오랜 시간 그리워하다

만나서 눈물겨운 상봉을 한다

그런데 우리 친정 가족은 비행기만 타면 언제든 만날수 있는데

그리워하지도 보고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문을 닫고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왜 그럴까?

돈 때문일까?

어릴때 엄마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보고자 엄마 마음에 들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런데 항상 외면을 당했다

친정을 위해 ㅈ을 ㅅ귀고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나의 희생은 내 인생만 없어졌을뿐 헛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