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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1일 목요일

어쩌면 나는 지금 내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라면서 부자집 딸이라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나라 전체가 가난할 때라 부를 느끼지는 못했고 

나역시 언제나 결핍을 느꼈다.

국민학교때 여름 방학, 겨울 방학에 강릉 조부모님댁에 갔었다

증조 할머니와 고조 할아버지가 일구신 부를 

할아버지 오형제가 분가를 하며 축내었다지만

강릉시 한복판에 삼천평의 집터를 유지하고 계셨다.

돈버는 사람은 서울에 있는 외아들인 아버지 뿐이라

조부모님은  할아버지 손님을 맞는 사랑채와 식구들을 위한 안채를 제하곤

행랑채, 별채를 세를 주고 하숙을 하셨다.

식사때가 되면 사랑채의 할아버지 손님들은 사랑채에서

객식구들, 하숙생들은 마루에 여러개의 큰 두레반을 펼쳐 식사를 했다.

잡곡밥에 된장국이나 찌게, 나물반찬이었지만 맛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사는 정도가 부자였다

그래서 부자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금융조합 이사장을 지내셔서 엄마는 부유하게 자라셨던 것같다

항상 우리보다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았다고 자랑이셨다

친정에선 이밥 시집와선 보리밥이라고 늘 신세 한탄을 하셨다

지쳇집에서 자유롭게 자라신 엄마는 400년 장손에 장손으로 내려오는 

4대 봉사를 하는 집에 적응을 하지 못하셨다

오빠를 낳고는 외할아버지에게 졸라 서울집을 마련하고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아버지에게 올라오셨다

나는 그집에서 태어났다

엄마는 부유하게 잘 먹고 잘 사셨다고 했지만 강릉시가 아닌 촌에서 자라셔서인지

뭔지 모를 열등감이 많으셨다

모든 열등감을 아름다운 미모로 커버하셨지만 마음이 아름답지 못해 덕이 없으셨다

허영심도 많으셔서 엄마는 영부인쯤 되어야 만족하실 것같았다.

어릴때는 우리집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다

키도 크고 미남 미녀인 엄마 아버지에 귀공자 같은 외모의 공부 잘하는 똑똑한 오빠가 있어

이보다 완벽한 가정은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못난 것은 나였다

미남 미녀에게서 태어난 딸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데

기대에 어긋나게 예쁘지 않았고 할머니를 닮아 키도 작았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들었고

나를 예뻐한 아버지에게 예쁘지도 않은 딸을 그렇게 예뻐한다고 구박을 하셨다

하지만 가족들의 미에 대한 기준이 높아 그런 것이고

나도 집 밖을 나가면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였을까

아버지는 그 집을 기반으로 평균 3년에 한번씩 이사를 다니시며 집을 늘리셨다

잦은 이사로 가구에는 신경을 쓰지 않으셨지만

집의 외관은 점점 커지고 좋아졌다.

그러면서 엄마 아버지의 싸움은 늘어갔고

아버지는 맞지않는 엄마와 늘 이혼을 하고 싶어 하셨다

친정은 유교 집안인데다 철저한 일부 일처 집안이라

상처를 하고 재혼은 할 수 있지만 이혼이라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도 집안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던 것같다

부부 사이가 안좋으니 가정이 화목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불행한 삶이 되었던 것같다

친구집에 가보면

우리집보다 작고 초라해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사랑에 넘치고 정겨워 보여 부러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친정 집은 점점 부유해지지만 모래 위에 쌓은 성같은 기분이 들었고

언젠가 무너질 것같은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졌었는데

내가 결혼하고 일년 후 그 집은 아버지의 사업으로 무너졌다

고아와 같은, 나와는 다른 어둠 속에 살던 아무것도 없는 남편을 만나 가정 꾸리며 살고 있는데

돈때문에 불행했던 적은 없는 것같다

항상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았다

나라가 부유해지고 자본주의 사회가 되어 돈이 제일인 세상이 되다보니까

부족함이 없어도 거지 소리를 듣게 된다.

나를 거지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은 공부를 시키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해서 학업을 마쳤고

알아서 취업을 하고

결혼시키려고 애를 쓰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

아들은 손녀까지 만들어 주었다

조금 부족하다면 부족하지만 모자라지도 않다.

아들 딸은 우애있게 자랐고 지금도 사이가 좋다

아직까지는 아들 며느리 딸 사위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남편과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다복하고 행복한 것 아닌가? 

외적으로보면 그렇고

나에게 행복한가? 하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나는 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꿈꿨다.

그런데 왜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